한해 한해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지만... 난 퇴근을 하면 회사 생각이 거의 안 난다.점차 일과 생활, 업무와 퇴근 후가 잘 분리(통제)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물론 회사 일로 잔뜩 빡칠 때는 전혀 아니다. 주말 내내 기분 나쁘기도 함. 잦은 일은 아님.) 내가 맡은 일의 경중이라거나, 회사 안에서 루팡이 되지 않기 위해 내 몫을 해야 한다거나 (당당히 말하건데 루팡인 적이 없다. 하... 그래서 힘든 거구나) 회사 내의 업무영역(권력),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는 퇴근하고 나면 솔직히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나는 내 시간을 회사에게 팔아 딱 그에 맞는 돈을 받는 찐 거래를 성사한 걸까? 회사에 있는 동안은 마음 깊이 빡쳐하고 공감하다가, 퇴근하면 완전 꺼버린다. 나와 같이 잔뜩 빡쳐하며 복어처럼 잔뜩 부풀어 올라 지금도 씩씩거리고 있을 동료들에게 미안할 지경이다. 나는 정말 퇴근하고 나면 아무 상관이 없어진다. 마치 다른 자아가 되는 것처럼. (암만 생각해도 퇴근하다고 다른 내가 되는 건 아닌데 이거 참 이상하다. 역시 자기 방어겠지. 그렇게 훈련한 결과겠지)
이게 아니어도 할 걱정이 많다. 걱정한다고 해결된 적도 없고, 확실한 건 그 열정을 다른데 쏟으면 인생이 더 윤택해진다. 차라리 영화를 보는 편이 낫달까. 직장이라는 루틴, 업무에 인생의 절반 정도는 주고 있지만 나는 그것보다 크거나 이미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거나 혹은 별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아니면 이미 그 정도의 범주를 벗어나 테두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님 정말 이미 궤도를 벗어난(곧 원심력을 잃고 날아가버릴) 상태가 아닐까.
특히나 최근들어 장기 프로젝트를 끝내고 출근 시간 딱 맞춰 나오고 야근 별로 없는 일반적 직장인으로 성실하게 지냈던 지난 몇 개월의 시간이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일에 묻히면 사실 내 형편은 생각도 안 난다. 그 시간 이후로 다시 맡은 새 프로젝트와 그에 따른 루틴의 변화, 그밖에 회사 내의 부침과 갈등, 개인적(외부)인 성과, 나이나 시간에 대한 자각 등으로 더더욱 나의 것을 해야만 한다는 숙명(아... 무겁다. 숙제라고 하자)이 나를 바꿔놓고 있다.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록 나는 내가 지금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저것 주둥이는 살아서 포부를 밝히지만 나는 점점 소극적이고 겁이 많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겠지! 언젠가는 이런 사람이 되어있겠지!'하고 말하지만 사실 불안함이 크다. 왜냐면 결국엔 언젠가 그걸 해내야 하는 건 나 자신이니까. 그런데 나는 날이 갈수록 회사 바깥이 두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월급에 익숙해지고 있는데) 오히려 그럴수록 시간이 갈수록 내 가능성과 용기는 매일매일 낮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특히 같은 필드에서 일하지만 퇴사를 하거나, 다른 일로 전향해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눈여게 보게 된다. 정말 많이. 분명 요즘 내 관심사는 이거다. 퇴사. 왜 이렇게 뭘 때려치고, 부수고 하려 드냐면, 그런 걸 하지 않으면 새로운 걸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로 새 술을 완전히 붓고 싶다면 일단 잔을 비워야 한다. 새로운 일. 일기, 퇴사 일지, 아니 퇴사 준비기를 써보기로 했다. 왠지 거창하고 싶어서 감히 퇴사준비록이라 하여 퇴사록이라 부르기로 한다. 만약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퇴사일에 이 책은 출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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