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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비투스(Habitus)

by 베러댄미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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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Habitus)>

Dorris Martin, 2019

 

 

 

 

읽는데 상당히 오래 걸린 책이다. 보고 보고 또 읽느라. 읽는 도중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느라. 이 책은 말로 설명하기 애매모호한 지점을 잘 정리하고 있는, 결국 나의 태도와 취향을 결정짓는 것은 '학습'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저절로 학습하거나, 뒤늦더라도 열심히 공부하거나 라는 당연한 진리를 깔끔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부터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생활에서도 자주 인용, 설명하고 있다.

 

아비투스(Habitus)란 개념은 책을 읽지 않아도 여러모로 말할 기회가 많을 터인데 '타인과 나를 구별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을 의미한다. 사고방식, 식습관, 말투, 마음가짐, 모든 것이 포함된다. 나는 '오래도록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나만의 취향'이라 간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비투스가 삶, 기회, 지위를 결정한다 

 

모든 개념 정의, 압축된 생각은 1장에 집합되어 있다. '1장. 아비투스가 삶, 기회, 지위를 결정한다'는 점박이 하이에나를 언급한다. 하이에나 중 서열 높은 암컷 새끼의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 생존에 유리하다. 안전한 환경에서 좋은 먹이를 공급받으며 빨리 자란다. 한 마디로 좋은 환경에서 자란다. 게다가 이미 서열이 높은 부모로부터 성공자원이 될 아비투스를 자연스럽게 배워가며 그 딸 역시 곧 지도층이 된다. 지위가 사회적으로 상속되는 것이다.

 

인간에게도 바로 적응할 수 있다. 인간 역시 각자 '다른 조건'으로 삶을 시작한다. 그 중에 고급 아비투스를 가진 자가 위로 도약한다. 저자는 아비투스를 구성하는 자원을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자본으로 제시하는데 이는 프랑스 사회철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책 『구별짓기*』 속에서 등장한 자본개념을 인용한 것이다. 결국 이런 자원을 미리 잘 갖춘 사람이 성공에 빠르게 도달한다. 상류층은 평생을 상위에 머물게 하는 배경을 얻는다. 저자가 독일인이라 사례는 주로 독일의 사례를 드는데 (귀족가문이 있다는 것도 참고하며 읽으면 좋겠다) 독일의 최고경영자 대부분이 상위 4%, 즉 상류층 가정 출신이다.

 

* 구별짓기 :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고발한 현대의 고전. 학력자본, 상징 자본, 사회관계 자본으로 구분해 각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차별적으로 소비되는 현 사회를 비판한다. 문화를 통한 실천 특히 예술작품의 수용형태가 취향의 차별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비투스의 자원

1) 심리자본 : 낙관주의, 열정, 상상력, 끈기, 안정감
2) 문화자본 : 존중받는 코드와 취향
3) 지식자본 : 학위, 경력, 기술, 능력
4) 경제자본 : 소득, 자산
5) 신체자본 : 외형, 매력, 건강
6) 언어자본 : 유창한 언변, 설명력
7) 사회자본 : 누구를 아는가, 멘토, 친분, 영향력

 


 "당신은 볼 수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운명순응'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운명에 순응하는 것. 내게 주어진, 보여지는 삶의 테두리 안에서만 나는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한 마디로 같은 계급에 있는 다른 이의 성취를 기준으로 야망을 품는다.

 

쟤가 하니까 나도 한다. 쟤가 하는 걸 보통 나도 한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 내 부모님이 모두 회사원이면 나 역시도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보고 아는 범주 안에서 생각하게 된달까. 갑자기 농부가 될 생각은 웬만해선 못한다.

 

부모라고 다를까. 자신이나 자녀를 위해 (난데없는)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는 없다. 왜냐, 모르니까. 여기서 이 말이 등장한다. "당신은 볼 수 없는 것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너무 알겠어서 내 마음에 콱 박혔다.

  

가만, 잠깐... 여기서 약간 열이 받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 주변, 내 부모 그 이상이 될 수는 없단 말인가? 본 게 없어서 다른 길을 상상할 수 없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서 무엇하나? 던져버려야 맞다.

 

하지만 참고 계속 읽어내려가야 한다. 이 책은 어찌보면 아주 솔직한 얘기를 하고 있니까. 환경, 부모, 교육 그런 거 하나도 상관없다는 입에 발린 소리가 나는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여러분, 환경이 이렇게 중요해요!' 라고 계속 말한다. 짜증나고 거슬리지만, 내가 어떤 이야기가 너무! 듣기 싫으면 돌아보자. 너무 자명한 사실이라 듣기 싫은 것일 수 있다. (솔직히 듣기 싫은 이야기는 대체로 내게 필요한 이야기다)

 

 

 


 

 

"아비투스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변한다"

 

드디어 화가 슬슬 풀리는 지점이다. 이 책의 개념 토대가 된 프랑스 사회철학자 '부르디외'의 실제 사례가 등장한다.

 

부르디외의 할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다. 부르디외의 아버지는 우편배달부를 거쳐 마침내 우체국국장이 되었다. 부르디외의 소속감은 애매해진다. 할아버지는 농부, 아버지는 우체국장. 그는 자신이 농민계급도, 시민계급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속감 부재로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김나지움을 다니기 위해 도시, 파리로 간다. 인류학자와 사회철학자로서의 최고의 경력을 쌓아 나간다. 그는 세계 최고 고등교육기관으로 인정받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교수로 재직하기도 한다.  분명 내가 볼 수 있는 것 안에서의 내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노력하면 이렇게 아비투스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아비투스는 느리게 따라온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서서히 물들게 두어야 한다. 관찰하며, 뒤로 물러나 상황을 탐색해야 한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내 기준의) 최정상은 어디인가, 최고라는 커트라인은 어디인가. 사회적 위치든 인생성과든 만족감이든 내가 최고라 여기는 그것에 도착하는 길에 아비투스는 내 달성을 도울 것이다. 아비투스는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나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때로 무섭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작고 편협할까봐. 꽤나 멀리, 다양하게 보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본 것들, 주워들은 것들, 그 테두리안을 맴돌며 '그만한' 생각만을 하고 사는 사람일까봐. 그래서 공부해야 한다. 모자란데 채우고 싶은 것이 있다면 늦더라도 채우면 된다. 다만 늦게 시작한 만큼 더딜 수 있으니 조바심 내지 않고 조용히 채워나가면 된다.

 

 

물론 지금 이 나이에 새롭게 악기를 배운다면 어떨까? 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마치 옆에 보이는 캐릭터 능력치를 채우는 기분이다) 읽는 당신은 어떤가. 어렸을 때 아비투스의 어떤 자원을 미리 확보했다 생각한다면 감사할 일이다. 어릴 때 채운 것은 편하다. 나도 모르게 쉽게 얻은 것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 코가 높아지면 안된다. 나를 책 속의 최상류층에 비교해 보면 어떤가. 부족하다. 굳이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고급취향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계속해서 나 역시 매일 책을 읽는다. 음악, 그림, 스포츠, 와인, 음식을 공부한다. 채워야할 것들은 널리고 깔렸다. 

 

 

이제 가정을 꾸리고 아이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친구들이 왜 그렇게 '좋은 환경'을 주고 싶어 하는지, 왜 그렇게 '더 가르치고' 싶어 하는지를 충분히 이해한다. 본인이 부족했다고 생각한 것, 본인이 누렸다고 생각한 것을 아이에게도 미리 미리 해주고 싶은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자주 추천하고 있다. 내게 부족한 것, 내가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기 위한 좋은 지점이 되어줄 책이다. 우리는 무언가가 부족하면 탓을 한다. (원래 내가 안한 것보다 남이 못해준 것을 따져 묻는게 마음이 더 편하다) 그런데 탓만 하고 있을 것인가. 조금 더 넓게 보기 위해,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 아닌가. 지금의 생에 후회가 없기 위해 읽어보면 좋을 '생각 전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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