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토리현이 사고를 쳤다
일본 혼슈 중서부에 위치한 돗토리현. 어릴 때부터 도토리 도토리, 이름이 똑같네? 하는 느낌으로 왠지 친숙해서 언젠가 돗토리현에 가봐야지 생각했는데 몇 년 전 당일치기로 기차를 타고 들른 적이 있다. 내 기준으론 생각보다 볼 게 없는 작은 마을이어서, 반나절 정도 택시를 빌려 쭉 다녔다.
큰 모래 언덕인 돗토리 사구를 한번 올라갔다 오고, 모래작품으로 된 모래 미술관을 다녀온 것 정도가 돗토리현에 대한 기억의 전부랄까. 아무튼 내가 잘 모르고 간 건지 특별한 게 없는(두번은 안 갈 것 같은) 곳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뉴스에서 오랜만에 돗토리현 소식이 눈에 팍 띄었다. 분명히 모르긴 몰라도 예산이 얼마 되지도 않을 지역인데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작품을 샀다는 것이다. 요즘 현대미술에 워낙 날리는 이름들이 많아 개인적으론 앤디 워홀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 않나.. 싶은 완전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 때 현대미술 시간에나 한번 들어봤던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의 상자* 를 5점이나 샀다는 것이다. 응?
* 앤디워홀이 직접 제작한 1점 6831만 엔
* 앤디워홀 사망 후 제작란 4점 각 5578만 엔
너네가 왜? 돈이 남아도나… 싶었는데, 7월에는 이미 그 유명한 캠벨스프*도 이미 사들였다는 것이다. 놀라서 찾아보니 도토리현은 일본의 47개 도도부현 중 가장 인구가 적은 지역이란다. 게다 계속 인구도 줄고 있는 마당에, 이게 무슨 일인가.
* 캠벨스프 입체작품 1점 4554만엔
여러분, 다 이유가 있다구요
돗토리현은 현립미술관 설립을 준비 중이다. 건립 예정지인 구라요시시라는 지역은 인구가 5만이 채 안되는 엄청 작은 도시다. 이 지역은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전통 건축물 지구고, 대부분의 건물은 간장 양조장과 술 양조장으로 사용되었던 곳들인데 에도, 메이지 시대의 건물들이 잘 보존된 고풍스런 작은 도시에 미술관을 세운다는 것.
특히나 팝아트가 중요 축 중 하나여서 팝아트의 대표적 인물 앤디워홀의 작품을 구매했다는 거다. 현민들은 돈 낭비를 했다고 반발이 심하다는데, 돗토리현 측은 분명 자신있는 계획이 있는지 설명회도 열고,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뉴스에 따르면, 유명작을 가지고 있어야 관광객이 많이 찾아올 것인데다, 좋은 작품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곳에 대여해주고 우리도 좋은 작품을 대여받을 수 있으니 미술관을 대표할 굵직한 아이템을 확보하는데 돈을 썼다는 것이다.
물론 인구가 줄어가는 적은 도시에서 이런 고가의 작품을 구입에 대해 왈가왈부 논란이 많을 거다. 당장 돈들데가 많은데 박스 1개에 6000만엔이 넘다니. 박스 하나에 6억이라니!
하지만 여러분, 이건 그냥 박스가 아니에요
박스 하나를 6억 주고 샀다고 혼나고 있는 모양새지만 브릴로의 상자는 그냥 상자는 아니다. 이런 뒷 이야기가 있다. 1964년, 앤디 워홀은 가까운 수퍼마켓에서 빈 상자를 산다. 목공소에 그 박스랑 똑같은 흰 합판 나무상자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한다. 워홀원래 브릴로(브릴로는 당시 아주 대중적인 수세미 상표일 뿐이었다) 상표랑 똑같은 디자인을 실크스크린으로 만들어 붙여 똑같은 작품, 브릴로의 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첫 개인전에 이 상자들을 전시한다.
뉴욕 화랑에 내놓은 이 작품을 본 뒤 미술평론가인 아서 단토(Arthur C. Danto)는 예술의 종말을 고한다. 그냥 브릴로 박스일 뿐인데, 왜 워홀의 작품은 수세미 박스가 아니라 작품으로 취급 받는가? 왜 그가 만든 브릴로 박스는 전시가 가능한가? 무엇이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단토가 예술은 끝났다며 종말을 고한 것은, 이제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이 달라졌다고 생각한 것일테다. 작품을 판단하고 감상할 때 단순히 눈에 보여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너머의 철학, 그 안의 의미를 읽어내야 함을 느낀 것이다.
워홀의 이런 시도를 통해 예술작품이란 것도 실크스크린으로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게 됐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대량생산을 하는 거다. 그러나 이런 찍어낸 것들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예술이 되었다. 그로 인해 예술의 개념 자체가 바뀐거다. 바로 예술의 정의를, 관점을 바꿔논 이가 앤디워홀이고 그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캠벨수프, 브릴로의 상자인 것이다.
10년 뒤를 기대해주세요
돗토리 현은 애니 ‘게게게의 기타로'의 작가 미즈키 시게루(돗토리 현이 고향이라고…) 이름을 딴 ‘미즈키 시게루 거리’로 시작해 그의 작품을 살려낸 요괴마을로 돗토리시 관광에 활력을 불어넣은 경험이 있다.
경제적으로도 인구적으로도 붕괴 직전의 도시가 사카이미나토 시청 공무원들의 아이디어로 기사회생 한 것이다. 1993년 미즈키 시게루 거리에서 마을 곳곳 청동 요괴동상,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까지 만들었다.
물론 이 기념관을 짓는데도 반대가 있었다. 어촌인 이 마을에 정어리 어획량이 10분의 1로 줄은 마당에… 이런 귀신 기념관에 몇 억이나 쓰는 거냐고 말이다. 반대를 무릅쓰고 만들어진 기념관. 그 이후로 관광객이 62만 명에서 85만 명이 되자 반대의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 자리한 요괴 동상, 요괴 열차, 요괴 택시, 요괴 가게, 굿즈, 먹거리에 기념관 까지.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이 있는 이 여행,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으로 이 곳이 새로운 관광지로 자리매김 했으니 돗토리 시는 분명 스토리가 있는 장소가 주는 관광의 힘을 알고 있는 것이다.
자, 구라요시시에 자리할 현립미술관의 개관은 2025년으로 예정돼 있다. 돗토리시가 욕을 먹어가며(?) 현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굵직한 작품을 모아가고 있으니 일단 이 자체가 화제가 되고 있다(서울 사는 나도 알게 됐으니)
이미 시작한 일. 미술관과 지자체 관계자들의 적극적 해명처럼 과연 10년 뒤, 20년 뒤 이 미술관과 구라요시시는 어떻게 변할까? 돈 쓴 만큼의 값어치를 할 수 있을까? 나도 궁금하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돗토리현의 행보를 응원한다😁
BT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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